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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타입 샘플/키스

1차 / HL

by JJH_ 2021. 11. 6.

“A, 키스해봐.”

 

홧김에 내뱉은 말도 그렇다고 계획적으로 내뱉은 말도 아니었다. 그냥 전부터 궁금했다.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나의 사적인 명령도 너는 이마저도 따라주는가에 대해서. B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멍하니 시계만 바라보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절 언제 집에 보내주나 기다리던 A의 표정이 굳었다. 짙은 눈썹이 살짝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퇴근 시간입니다.”

 

싫다느니 좋다느니 그런 의사가 담긴 말도 아닌 무심한 말을 참 쉽게도 내뱉었다. A는 자신의 아래에서 절 올려다보는 이를 내려다봤다. 귀찮다. 이번엔 또 뭔 개수작을 부리려고 이러는가 싶었다.

 

“퇴근 시간이라도 내가 시키는 거면 다 해야 하는 거잖아.”

 

우리 정이 고작 출퇴근 시간으로 딱딱 갈라지고 그럴 사이니? 네. 너무해라. 숨 쉴 틈도 없이 주고받은 대화 끝으론 A의 짧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검은 눈동자가 옆으로 굴러가더니 천장 가까이 달린 시계를 흘끗 쳐다봤다. B가 필사적으로 붙잡지만 않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B의 방을 나갈 기세였다.

 

그렇게 한참 정적이 맴돌았다. 명령을 내릴 거면 내리고 보낼 거면 보내지 이게 뭐 하는 짓이지? A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B를 내려다봤다. B도 그런 A를 아무 말 없이 올려다봤다. 두 사람 다 그뿐이었다. 결국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건 A였다. 할 말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딱딱한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뒤를 돌려던 참이었다.

 

셔츠 소매 위로 손이 닿았다. 손목이 잡혔다. A는 꺾으려던 고개를 돌려 다시 B를 바라봤다. 여전히 책상에 걸터앉은 채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에 비해 상체를 살짝 숙이면서까지 아슬아슬하게 제 손목을 잡고 있었다. 이젠 우스워 보일 정도로 절 붙잡고 있었다.

 

“명령이었는데.”

 

키스하라는 거. B가 A의 손목을 쥔 채로 웃었다. 입꼬릴 올려 웃는 게 평소처럼 화사했다. 마치 본인은 세상 더럽고 무서운 건 하나도 모르는 상냥한 사람인 것처럼 웃었다. B는 늘 그렇게 웃었다. A의 앞에서든 뒤에서든 늘. B는 궁금했다. A는 제 사적인 감정을 알면서도 이 명령을 따라줄지 안 따라줄지.

 

안 따라준다면 예상한 대로 늘 그렇듯 공과 사를 구별하는 멍멍이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이 명령을 따라준다면, 그건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까. B는 어림도 없는 선택지를 두고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A는 미동도 없이 절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바랄 걸 바랐어야 했나. B는 결국 장난이었다는 듯 웃으며 A의 손목을 잡은 손을 풀었다. 그리곤 양손을 살짝 들어 올려 두 손을 쫙 펼치려고 했다. 그때였다.

 

쾅, 하고 코팅된 나무 책상 위로 무언가 내리 찍히는 소리가 났다. B는 순간 숨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숨을 들이켤 뿐이지 내쉬질 못했다. 시야에 A로 가득 찼다. 밝게 방안을 비추던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을 A의 등이 모조리 먹어 치웠다. 보이는 모든 시야가 그림자 져 보였다. 살짝 들어 올렸던 두 손목이 쥐어 잡혀있었다. 걸터앉아만 있던 책상 위로 상체가 완전히 눕혀진 상태였다. A가 단숨에 제 손목을 잡고 절 그 위로 넘어트린 것이다. 뭐 하는 짓이냐느니,

 

왜 이러냐느니. 그딴 걸 물을 정도로 B도 A도 어리지 않았다. 그저 B는 이렇게까지 해놓고도 A는 과연 제게 입을 맞출지. 딱 그것만 생각했다. 절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눈으로 내려다보는 이를 올려다봤다. 맞닿은 뜨거운 숨결이 정확히 세 번 반. 세 번이 겹치고 네 번이 마저 겹치기도 전에 입술이 맞부딪혔다.

 

침 하나 안 발려 건조한 입술 두 개가 짓눌리듯 겹쳐졌다. B의 어깨에 걸쳐있던 정장 코트가 등에 처참히 깔려버렸다. 주름진 코트의 감촉이 등으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B는 제게 상냥함이라곤 하나 없이 키스도 뭣도 아닌 입술을 짓누르듯 뭉개는 A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림자가 어둡게 깔린 검은 눈동자는 미동 하나 없이 B의 붉은 눈동자를 건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맞닿았는데도, 그 누구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높게 올라선 두 코가 서로의 광대와 코에 짓눌려 뭉개졌다. 코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우리 집 멍멍이는 키스하랬더니 입술 박치기나 하고 있었다. 키스하는 법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일부러 이러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귀엽다고 해줘야 할지 괘씸하다고 해줘야 할지. B는 A에게 붙잡힌 손목에 아예 힘을 뺐다. 온몸에 힘을 뺐다. 저절로 벌어진 입술 틈으로 뜨거움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제게 입술을 짓누르기나 하던 A의 입술이 저절로 벌어진 B의 입술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A의 코가 B의 볼에 완전히 뭉개졌다.

 

결국 A가 숨을 쉬기 위해 천천히 입술을 벌린 그 틈에 B는 제 개의 아랫입술을 집어삼키듯 물었다. 저절로 A의 입술 사이로 B의 윗입술이 물렸다. 건조하기만 하던 두 입술은 어느새 서로의 뜨거운 숨결과 틈새로 젖어나오는 타액으로 부드럽게 젖어있었다. B의 코끝으로 A의 윗입술과 인중이 닿았다.

 

맞닿는 숨결이 뜨거워 단숨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더웠다. 제 손목을 잡은 손목에서도 땀이 조금씩 배어 나왔다. B는 제 윗입술을 머금은 채로 입술만 조금씩 움직이는 A가 괘씸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안 할 거면 시작도 하지 말지.

 

양 손목이 붙잡힌 B가 살짝 벌렸던 입술을 전보다 더 크게 벌렸다. 그리곤 그대로 혀를 내밀어 A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거 없던 A는 이마저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혀가 저절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혀끝이 서로를 간질이듯 살살 문지르더니 미끄러지듯 더 깊이 찌르며 들어갔다.

 

B의 혀가 A의 입천장을 깊은 곳에서부터 쭉 훑었다. 제 손목을 쥔 두 손에 힘이 가해지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B의 혀가 제 입천장을 훑자, A는 위로 드러난 B의 혀 아래를 슬쩍 핥짝이다 그대로 혀를 먹어 치우듯 머금었다. 그대로 혀를 깊게 빨아올리는데 그 소리가 이상하리만큼 적나라했다.

 

B는 제 눈 한 번 피하지 않고 고갤 움직이는 A를 끌어안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다는 듯 A의 두 손은 제 손목을 단단하게 쥐고 있었다. B는 살짝 어깨를 꿈틀거렸다. 그러자 A가 이젠 아예 B가 움직이지도 못하게 가슴을 맞대고 압박했다. 가슴 위로 내려앉은 몸이 숨이 막히도록 무거우면서도 그 압박감이 은근히 좋았다.

 

B는 제 혀를 빨아올리며 절 내려다보는 이를 올려다봤다. 눈꺼풀을 올려 바라본 눈은 여전히 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제 혀에서 떨어지려는 혀가 아쉬웠다. 그래서 B는 그대로 고갤 살짝 내빼, A의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혀를 잡아 깨물었다. 그대로 다시 머리를 책상에 붙이니 침이 그득하게 고인 혀가 제게 끌려 다가왔다.

 

입안으로 A의 침과 제 침이 뒤섞여 들어왔다. 목구멍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것을 가쁘게 넘겼다. 졸지에 혀가 길게 내빼져 B에게 물린 상태가 되어버린 A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썹이 살짝씩 들썩이는데 그 모습조차 좋았다. B는 가쁜 호흡에 A의 혀를 놓아주며 입꼬릴 한껏 올려 웃었다.

 

“하, 아...”

 

뚝뚝 끊기듯 내뱉어진 호흡의 끝은 미세하게 떨렸다. B는 자신의 가슴 위에 짓눌린 A의 가슴 너머로 그의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보다 더 뛰는 건가. 아니면 그대로인 건가. 알 수 없었다. 미친 듯이 뛰는 건 제 심장 박동이라 어떤 게 A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제 소리에 A의 소리가 분명 묻혔을 게 뻔하니까.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들썩이는 가슴에 뜨겁게 열이 몰리는 두 가슴에 데일 것만 같아서 좋았다.

 

B는 다시 A의 아랫입술을 이로 물곤 잡아당겼다. 그리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저 턱을 치켜드니 제 멍멍이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그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눈으로 절 바라보다, 제 쇄골에 이를 박아넣었다. 살갗이 찢기도록 이를 세우진 않았다. 깨무는 것보단 좀 더 아프게 제 쇄골과 목, 그 사이 부분을 이로 짓눌렀다.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떨어지는 축축한 혀가 소름 돋았다.

 

입술은 점점 타고 올라와 B의 목을 훑었다. 혀가 노골적으로 턱선을 쭉 핥았다. 주인의 얼굴을 기꺼이 핥아주는 개새끼 같았다. 개의 주인은 숨이 틀어막히던 때보다 더 숨을 헐떡였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가는데 그 침이 이젠 누구의 것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입안이 A와 저만의 흔적으로 더럽혀있었다.

 

눈꺼풀과 시선을 천천히 내려보니 A가 혀를 내민 채 제 턱선을 타고 올라 귓불을 입에 머금고 있었다. 여전히 제 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제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저처럼 황홀해 죽을 것 같단 눈도 아니었다. 정말 개새끼, 그 자체였다. 귀 전체에 닿는 숨이 달았다. 온몸이 피가 뜨겁게 달궈지더니 심장을 지나 뇌 주변만을 팽팽 돌았다. 시야도 머릿속도 새하얬다.

 

숨을 토해내는데 온몸이 조금씩 떨렸다. 제 손목을 꽉 쥔 손을 손톱으로 쭉 긁었다. 다시 입을 맞추고 싶었다. 다시 입술을 맞대고 혀를 뒤섞고 차가운 눈과는 달리 미친 듯이 뜨거운 그 숨결에 잡아먹히고 싶었다. B는 제 귓바퀴를 혀로 핥아 올리는 A를 옆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말하려고 입술까지 뗐다. A가 먼저 입을 열지만 않았다면.

 

“...시키는 대로 다 했으니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평소보다 살짝 호흡이 가빠 보였다. 그러면서도 제 두 손을 미련 없이 놓아버리고 맞붙였던 몸마저 떨어졌다. 제 멍멍이가 제 귓바퀴를 핥다가 급 퇴근 시간이라며 담담히 속삭였다. 얼떨결에 홀로 책상에 눕혀진 B는 멍하니 천장을 쳐다봤다. 여전히 숨을 헐떡였다.

 

A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올리더니 흐트러진 옷매무새까지 정리했다. 그리곤 정말 그대로 인사하나 더 덧붙이지도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쾅. 고급스러운 나무문이 닫히고 문 너머의 목도에서 구두 굽 소리가 일정하게 또각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평소라면 A의 다리를 잡고 어딜 가냐고 하다 마는 게 어디 있느냐고 소리란 소리를 다 질렀을 텐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입안에 고인 A와 제 침을 버겁게 넘겼다. 아무 맛도 안 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이상하게 달았다. B는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구두 굽 소리가 더는 나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숨을 가다듬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지다 못해 엉켜 엉망이었고 등에 깔려있던 정장 코트는 허리까지 내려가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어 있던 옷은 살짝씩 올라가 주름져 있었다. B는 책상에서 몸을 일으킬 생각도 없이 그 자리 그대로 호흡이 완전히 가다듬어지기까지 기다렸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 하아, 하고 내뱉어지는 떨리는 호흡. 그 모든 게 지워지고 뜨거웠던 머릿속이 식혀지고, 멍하던 정신이 돌아오고서야 B는 알 수 있었다. A의 손에 잡혀있던 양 손목에 멍이 들었다는 것과 A의 땀으로 살짝 젖어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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