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해줘. 히소카는 그 한마디 툭 내뱉곤 평소같이 웃었다. 매끄럽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얼마나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지 알 터다. 그걸 알고도 짓는 웃음은 언제나 불쾌하다. 유쾌한 거라곤 시원하게 올라가는 저 입꼬리뿐.
로시는 그 꼴이 참 보기 싫었다. 얼마나 보기 싫었냐면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저 긴 속눈썹조차 거슬릴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얇은 검정 나시를 입은 흉부는 부풀었고 어깨는 절로 올라간다. 길게 들이켠 숨을 짧게 내쉰다. 호흡이 마치 코웃음 치는 것만 같다.
“내가 왜 해줘야 하는데?”
그리 차이 나지 않는 키 차이는 편안한 시선을 만들었다. 로시는 한 뼘 떨어져 있던 벽에 등을 기댔다. 축 늘어진 두 팔로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든다. 한순간에 오만해진 표정은 조금 전까지의 상황을 잊게 만든다. 히소카는 자신에게 뭐 하나 지지 않으려는 로시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다, 그를 따라 팔짱을 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키스할 준비가 된 것처럼 나른하게 풀린 눈꺼풀은 짜증을 부른다. 히소카는 여전히 그 기분 나쁜 웃음을 지닌 채 말했다.
“이건 내가 손해 보는 거래니까.”
“손해 보는 거래를 할 정도로 간절하나 봐.”
“간절하다고 하면 꼭 해줄 것처럼 말하네.”
히소카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어진다. 로시는 여전히 그 오만한 표정을 겉으로 내보이며 생각했다. 그도 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 거래는 당연히 히소카에겐 손해고 자신에겐 손해 하나 없이 완벽한 거래라고.
아주 티끌만큼의 손해가 있다면 로시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원한 게 이 티끌일지도 모른다. 이마저도 감정적인 생각이기에, 로시는 쩍쩍 달라붙는 입안을 간간이 혀로 적셨다.
……제기랄.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자존심이니 뭐니 할 문제가 아니다. 저 오만하고 불쾌한 남자가 가진 것은 로시에겐 너무나도 필요한 정보였다. 묵묵히 맞닿는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이어졌다. 결국 먼저 입을 여는 건 로시였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많은데.”
“그런 거 필요 없다는 거 잘 알면서.”
빌어먹을 새끼.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이 안 먹히는 새끼. 로시는 턱 끝까지 차오른 짜증에 눈알을 크게 돌렸다. 숨을 한 번 더 들이키며 고갤 위로 올렸다. 그러다 또다시 내리고 옆으로 꺾고 다시 정면으로 돌려놓는다. 히소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마치 만화 영화를 보는 어린아이처럼 로시의 행동을 눈 한 번 떼지 않고 쳐다봤다.
치미는 짜증은 어떻게 해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결국 답은 하나다. 로시는 팔짱을 꼈던 두 팔을 풀었다. 들이켰던 숨을 한숨처럼 길게 내쉬며 벽에 등을 떼어냈다. 히소카가 무어라 입술을 떼려 하자, 예상이라도 한 것인지 그의 입을 틀어막는다.
“닥치고 입이나 벌리고 있어. 해달라는 거 해줄 테니까.”
남이 들으면 싸움 거는 게 아닌가 싶은 말에도 히소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눈꼬릴 휘면서까지 웃는다. 오히려 마음에 들어 죽겠다는 듯이. 죽여도 내가 죽여야 하는데. 로시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히소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고작 한 걸음만으로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로시의 손이 히소카의 뺨 위에 얹어졌다. 다정하게 어루만지는가 싶던 손은 거칠게 그의 턱을 잡고 아랫입술에 엄지를 올려 벌린다. 우악스러운 힘과는 달리 여유롭게 벌어지는 입술 새로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온다. 뜨거운 숨결이 입술에 닿자, 온몸이 절로 후끈해졌다.
키스만 하라고 했다. 다정하게 하라는 말도 여유롭게 하라는 말도 없었다. 그러니 이따위로 해도 내 잘못은 없다. 손해 보는 장사를 원한 건 히소카니까. 포개지는 입술은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비틀렸다. 맞닿은 코가 뭉개져 자연스럽게 옆으로 비꼈다.
로시는 익숙하게 고개를 옆으로 비틀고 히소카의 입술 사이로 두꺼운 혀를 쑤셔넣었다. 혀 윗면에 그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스쳤다. 로시의 혀가 히소카의 혀를 찾아 헤매자, 히소카의 혀가 기다렸다는 듯 얽힌다. 쩍쩍 메말라 있던 로시의 입안과는 달리 히소카의 입안은 축축했다. 달군 것처럼 뜨겁고 녹진하다. 혀 한 번 얽힌 거 가지고 메말랐던 입안이 한순간에 달아오를 정도로 말이다.
로시는 입안에 맴도는 뜨거운 숨결을 억지로 들이켰다. 히소카보다 숨을 크게 들이켜면 왠지 모르게 지는 듯한 기분이 들 터다. 눈을 감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 뭐가 그리 좋은지 앞에 선 여자를 바라보는 쭉 째진 눈매가 조금 휘었다. 로시는 자기 눈을 피하지 않는 히소카를 노려보았다. 키스 한 번 하는데 이렇게까지 신경 쓸 게 많다니. 여러모로 귀찮고 복잡한 남자다.
타액에 뒤덮인 혀들이 익숙하게 서로의 입안을 훑는다. 뱀처럼 길게 빠진 혀가 가지런한 치아를 문지르다 더 깊숙이 들어올 때면, 로시는 쉼 없이 넘어오는 그의 타액을 급하게 삼키기 바빴다. 괜한 사람 놀리고 싶어 안달 난 게 훤히 보였다. 오늘따라 더 안달 난 그의 고개는 자꾸만 앞으로 숙어졌다.
그의 고개가 숙어질때면 로시의 고개는 저절로 턱을 치켜들며 올라가게 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진득한 타액이 절로 넘어오니 숨 쉬는 것이 전보다 버거워졌다. 로시의 입술이 움찔거릴 때면 히소카는 은근슬쩍 입술을 떼어내 공기를 넣어주었다. 저 여유로운 행동이 사람 미치게 만든다. 좋은 의미로 미치게 만든다는 게 아니라 짜증 나 뒤져버릴 정도로 미치게 만든다는 뜻이다. 히소카는 입술이 아주 잠시 떨어질 때면 일부러 로시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절 내려다보는 시선이 불쾌하다. 빌어먹을.
그의 턱을 잡던 로시의 손이 더듬더듬 내려가더니, 핏줄 선 그의 목을 조르는 듯한 모양새로 거칠게 잡았다. 놈한테 지는 게 숨 막혀 죽는 것보다 싫은 모양이다. 완전히 비틀린 고개에, 서로의 코가 서로의 광대나 볼에 뭉개졌다. 주로 입으로 숨을 쉬지만 엉망이 된 호흡 속도를 맞춰갈 때면 두 사람의 코에선 드문드문 뜨거운 바람이 새어 나왔다.
툭. 로시의 몸이 뒤로 넘어갈 듯 말 듯 하더니 기어코 벽에 등이 닿았다. 점점 그에게 가둬지는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로시는 절 몸 안에 가두려는 히소카의 목을 꽉 쥐었다. 손끝에 힘을 주니 조금 자란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놈의 목에 선 핏줄이 짧게 움찔거렸다. 그 움찔거리는 모습 한 번이 마음에 들어 다시 시선을 들어 올린다. 눈이 마주친 히소카는 여전히 그 째진 눈으로 로시의 얼굴을 찬찬히 훑고 있었다. 노란 눈동자에 이상야릇한 것이 일렁일 때였다.
“……아.”
히소카의 입에서 흐릿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신음의 끝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로시의 혀를 집착적으로 옭아매던 히소카의 혀에서 무언가 흘렀다. 익숙한 붉은색. 피였다. 로시는 두꺼운 혀끝에 깊숙이 박아넣은 자기 송곳니를 느릿하게 빼냈다. 그의 피는 로시의 송곳니부터 입술, 그의 턱까지 여러 갈래로 찢어져 흘러내렸다.
예상보다 많이 흐르는 피에도 로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꼴좋다는 듯 송곳니와 아랫입술에 묻은 그의 타액 섞인 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히소카는 찢긴 혀에 검지 끝을 대더니 히죽 웃었다.
“자꾸 그렇게 쳐다보면 흥분되는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로시는 입 안에 남은 침을 바닥에 뱉어냈다. 그 뒤로 히소카가 무어라 말했지만 로시는 그 말이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애써 진정하려는 숨소리를 속으로 밀어내느라 들리는 건 자신의 거친 호흡뿐이었다.
“이 정도면 됐지?”
그의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홀로 아무렇지 않은 척 묻는다.
“뭔가 아쉬운데.”
겨우 피가 멈췄는지 입술 아래로 흘러내린 남은 피를 쭉 밀어내듯 닦은 히소카는 은근슬쩍 로시의 어깨에 제 어깨를 들이밀었다. 어디서 친한 척이야. 로시는 여름철 닿은 모기처럼 한쪽 어깨를 움츠렀다. 입 안에 남은 피가 없을 텐데도 비릿한 맛이 영 빠지질 않는다.
“거래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은 놈 탓이지.”
일부러 비웃는 듯 끝을 끌어올린 로시의 말에 히소카는 잠시 생각하는 듯 로시의 입술을 빤히 바라봤다.
“상세히 설명해줬으면 해줬을 것처럼 말하네.”
네가 상세히 설명했으면 거래는 성립되지도 않았겠지. 로시는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달라붙는 히소카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젖혔다. 호흡은 벌써 진정됐고 거래도 이만 끝났다. 타들어 갈 것처럼 달아올랐던 입안은 어느새 미지근하게 식었다. 입안에 서로의 타액은 사라졌고 비릿한 맛도 점점 희미해졌다. 서로에게 더는 남은 볼일이 없는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말없이 서서 허공을 바라봤다. 이번엔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로시였다.
“다른 거래도 하나 할래?”
히소카는 그 말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만족스러운 그 눈빛으로 로시를 보았다. 그러면서 말투는 사람 농락하듯 비비 꼰다.
“무슨 거래?”
짜증 나는 새끼. 로시는 빛에 번득이는 히소카의 눈을 노려보며 헛웃음을 쳤다.
“영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되고.”
“무슨 거래인지 말도 안 해주고?”
“안달 난 사람처럼 왜 이럴까.”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화를 오래 하기엔 두 사람은 말보다는 행동이 더 잘 맞는 사람이었기에, 늘 같은 패턴일 수밖에 없었다. 로시는 보이는 아무 건물에 들어가 낡을 대로 낡은 문을 열어젖혔다. 뒤에서 들리는 히소카의 웃음 참는 호흡이 오늘따라 희미하다. 먹먹한 귀와는 달리 입 안에 남은 맛은 여전히 질척인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비릿하기만 했는데.
로시는 먼지 쌓인 침대 기둥에 손을 얹었다. 다시 포개지는 입술에 느릿하게 눈꺼풀을 내린다. 비릿함보다는 역하다. 역한 쓴맛. 알코올보다는 마약이고 마약보다는 독인, 그런 맛. 로시의 눈앞은 이윽고 암전되었다. 뭐가 됐든, 아무래도 이젠 중독된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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