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커피를 탔더니 마시지 않겠단다. 현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두 커피잔과 소파에 막 앉은 한을 번갈아 봤다. 막 내린 커피에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소파에 앉은 한은 헝클어진 앞머리를 뒤로 연신 쓸어 넘겼다. 손가락 사이로 새까만 머리카락과 축축한 물기가 흘러내렸다. 현은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서랍에 구비된 수건 한 장을 꺼냈다. 창밖에선 소나기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걸어왔니?”
그리 말하며 자연스럽게 한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고개를 빼려니 현은 가만히 있으라며 하얀 수건으로 냅다 한의 입부터 문대버렸다. 선배가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한은 자신의 앞에 선 이를 올려다보며 뒤늦은 대답을 했다.
“근처에 일이 있었습니다.”
“잠시 들린 거야?”
“거길 잠시 들린 겁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가? 현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새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적 없는데. 나이를 먹어선지 기억이 영 들쭉날쭉하다. 하얀 수건이 한의 얼굴을 톡톡 두들겼다. 뽀송한 수건이 눈가를 문지르니 그쪽 눈만 슬쩍 감아준다. 한의 긴 검정 속눈썹이 수건을 스쳤다.
“그래도 다음부턴 우산이라도 쓰고 다녀라.”
“알겠습니다.”
“괜히 감기 걸리면 고생만 하니까.”
“예.”
“그런데 정말 근처 지나가던 길이었니? 어째 꼴은 물에 젖은 생쥐 같은데…….”
“선배는 퇴근 안 하십니까?”
뒷말이 가차 없이 먹혔다. 묻는 말에만 조용히 대답하더니. 현은 자꾸만 내려오는 한의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겼다. 그리곤 슬슬 퇴근하려 했다며 입꼬릴 올려 웃어준다. 한은 그 웃음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자꾸만 시야를 가리는 수건이 이젠 불편하다. 무슨 비 맞은 고양이 닦아주듯 꼼꼼히 닦아주는 현의 손길이 좋으면서도 답답했다.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살짝 들어온 한쪽 다리도 그렇고, 어디 더 닦을 곳 없나 내리깐 눈꺼풀도 그렇고. 뭐, 언제는 안 답답했냐마는.
“선배.”
한의 부름에 현은 내리깔았던 눈꺼풀을 살며시 올렸다. 시야에 잡힌 짙은 눈동자에 얼굴이 비친다. 빗물에 축 늘어진 머리카락이 길고 흰 손가락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벌어진 긴 머리카락과 드러난 목. 그곳엔 여전히 물기가 남아있었다. 더워선지 처진 머리카락을 들췄다 덮었다. 현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기도 닦아줘야 하나.
"이젠 제가 닦아도 되니 이만 앉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눈을 휘어 웃어준다. 말하는 거나 입만 보면 딱딱한데 눈만 보면 참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 현은 한의 하얀 목을 빤히 보았다. 그러다 잠시 멈칫했다. 얼굴은 닦아줘도 되고 목은 안 되나? 투명한 물방울이 목선을 타고 미끄러진다. 몇 번의 깜빡임. 결국 수건을 쥔 손이 제멋대로 미끄러진다. 얼굴은 되는데 목이 안 될 이유는 없지. 현은 상체를 조금 더 숙여 수건으로 한의 목선을 쓸어내렸다. 물 먹은 수건을 벗어난 검지가 살갗에 닿았다 떨어졌다.
일부러 떨어지라고 말해줬더니 오히려 더 달라붙는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숨소리에, 한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두 손을 뻗었다. 두 손이 양 골반 위로 올라왔다. 벌어진 허벅지 사이를 점점 좁히니 제 허벅지보다 훨씬 얇은 허벅지가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현은 그에게 갇힌 다리의 반대편 다리로 겨우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무게 중심이 점점 앞으로 쏠리니 온전히 서 있기가 버거워졌다. 결국 반대편 무릎도 슬그머니 소파에 올렸다.
“……한아, 지금 뭐 하는 거니?”
목과 어깨, 그사이에 얹어진 손에 힘이 가해졌다. 현은 당황한 듯 두 눈을 굴리며 자신의 아래서 절 올려다보는 새파랗게 어린놈을 흘겨봤다. 그 새파랗게 어린놈은 골반에 얹었던 손끝에 점점 힘을 가하더니 바지 속에 집어넣은 셔츠를 만지작거렸다.
"셔츠가 빠져나왔습니다."
분명 단정하게 집어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옆구리 쪽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셔츠를 한참 만지작거리더니 안으로 밀어 넣는다. 눈은 여전히 상대에게서 떼질 않았다. 현은 말없이 제 눈만 빤히 보는 이를 차마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이다음을 원하는 눈빛이다. 분명 말로 재촉하진 않았다. 다만 골반을 쥔 그 큰 손바닥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적나라하게 느꼈을 뿐이다. 차라리 하면 안 되냐고 묻기라도 해주지. 현은 두 눈을 애써 굴리고 또 굴리다 눈꺼풀을 아래로 깔았다. 축 내려가는 눈썹과 속눈썹. 피하려다 또 마주쳐버린 시선에, 현은 오늘도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급하게는 하지 마…….”
허락이 떨어지자 뜨겁게 달아오른 양손이 골반에서 옆구리로 올라탔다. 몸이 한 뼘 더 가까워졌다. 뭔가 말려들었단 생각이 들었을 땐, 가슴팍에 닿은 아랫배가 물기에 축축하게 젖고 있었다. 수건은 이미 저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
현은 이래도 되나 싶어 계속 머뭇거렸다. 그래 놓고 막상 한의 얼굴과 가까워지자, 익숙하게 그의 윗입술을 물었다. 말캉한 혀끝이 한의 윗입술에 뭉개지듯 닿았다. 입안에 비릿한 비 냄새가 치밀었다.
아랫입술이 따라 물렸다. 한의 혀끝이 현의 아랫입술 위를 훑었다. 그러다 좀 더 입안 가득 물고 싶은지 깊이 머금었다. 어중간하게 어깨를 잡고 있던 현의 손이 익숙한 곳을 찾았다. 빗물 머금은 셔츠 위를 몇 번 더듬거리다 깃을 잡고, 무거운 머리카락을 들춰 그 속에 두 손을 넣었다.
목을 감싸 안고 제 턱을 끌어당겼다. 소파에 기대앉은 한의 목이 점점 위로 꺾였다. 입술은 느릿하게 제 할 일을 하듯 서로의 입술을 물고 늘어지길 반복했다. 한의 고개가 뒤로 젖혀질수록 현의 턱은 당겨졌다. 사무실의 빛을 모조리 가린 현의 얼굴은 어둡기보단 붉었다.
맞닿은 온기가 열에 달아올랐다. 셔츠가 닿았음에도 젖은 살갗이 닿는 것 같아 온몸이 녹진해졌다. 현은 점점 풀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이성은 날려 보낸 지 오래지만 계속 저 새까만 눈을 마주하면 괜스레 기분이 묘해질 것만 같았다.
한의 이가 현의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물었다. 입술이 짧게 떨어졌다. 한은 나른한 박자로 숨을 쉬는 현을 바라보다 한 번 더 입술을 맞댔다. 이번엔 혀가 뒤엉켰다. 타액으로 범벅된 혀들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미끄러질 때마다 자꾸만 분비되는 타액이 한의 혀 너머로 흘렀다. 목을 두른 팔이 비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목젖의 움직임을 느꼈다.
한은 급하게 하지 말라는 현의 말처럼 최대한 느긋하게 입을 맞췄다. 미끄러진 혀는 가지런한 치열을 훑고, 여린 살을 탐했다. 혀가 깊숙이 들어올 때면, 현은 자꾸만 벌어지는 틈새로 흐르는 자신의 타액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때마다 수치심에 머리는 쿵쿵 뛰고 심장은 술에 취한 듯 어지러웠다.
아무리 한이 현을 배려해도 현의 호흡은 그의 속도보다 한 텀씩 밀려났다. 버거움에 맞물린 입술 새로 긴 숨을 내보내는 등을 열감에 젖은 큰 손이 연신 쓸어줬다. 서로의 광대와 볼에 뭉개진 코가 그 가쁜 호흡에 한몫했다.
한은 현의 안경을 빼줄까, 잠시 생각했다. 고개가 끄덕여질 때마다 비틀리는 안경이 불편해 보였다. 제 눈을 피하다 못해 아예 꼬옥 감아버린 이를 바라보며 숨을 짧게 끊어 뱉었다. 하아……. 달뜬 신음이 입술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 흐린 신음을 앓는 현을 보고, 여린 살을 간지럽히던 혀와 입술을 떨어트렸다. 목을 감싼 손끝이 발발 떨렸다. 젖혔던 고개를 살며시 들자, 맞닿은 이마에 앞 머리카락들이 엉망으로 겹쳤다. 소나기 탓에 높아진 습도 탓인지, 아니면 덜 닦인 빗물 탓인지, 맞댄 이마는 뜨겁고 축축했다.
눈을 감았던 현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입술과 간지럽게 닿은 코끝, 마주한 시선이 낯부끄럽다. 현은 목을 감싸던 손을 점점 올려 한의 뺨을 쓸어올렸다. 그리곤 시뻘게진 한 손으로 제 안경만 슬쩍 뺐다. 비틀리며 짓눌렸던 안경 자국이 점점 둔해진다. 현은 가쁜 호흡을 입술 새로 흘려보내며 흉부를 부풀렸다 가라앉혔다. 힘이 풀릴수록 무릎은 자꾸만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한은 그 모습을 보며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현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던 손을 멈췄다. 급하게 하지 말라 해놓고, 또. 한은 눈꺼풀을 나른히 풀다 들어 올렸다. 갈색 머리카락 안으로 핏줄 선 손이 최대한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의식된 절제였다.
뒷머리를 쥔 손에 살짝 힘을 가하니 한 번 더 닿을 기세로 고개가 숙어졌다. 현은 훅 숙어진 고개에, 다급하게 두 손을 소파 등받이 위에 올렸다. 벌어진 입술에서 뜨거운 숨 한 번 길게 뱉은 한의 가슴이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급하게 해도 될까요.”
한이 대뜸 물었다. 끝이 물음표인지 온점인지 헷갈린다. 현은 그 예의 바른 물음에 시뻘게진 얼굴로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습도 높아진 공기에 열감이 더해져 머릿속이 아득했다. 아직 혀 한 번 얽었을 뿐인데. 현은 세웠던 무릎을 천천히 내렸다.
엉덩이에 닿는 단단한 허벅지에, 소파에 올렸던 손을 어깨 위로 내린다. 허벅지 위로 닿는 무게가 기분 좋았다. 한은 열이 오른 작은 머리통을 손으로 받쳤다. 그리곤 좀 더 가까이 머리를 끌어당겼다. 또다시 닿는 입술은 힘없이 벌어졌다. 현은 점점 더 깊이 들어오는 혀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창밖의 그치질 않는 소나기였다. 소나기가 아니었나. 등에 닿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빗소리가 아득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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