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정말 아름다워요. 레니발렌이 평생 들어온 칭찬이다. 짙고 붉은 그의 눈을 볼 때면 애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아름답다는 말만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어떻게 싫을 수가 있겠는가. 고명한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소리인데. 흑단같이 새까만 머리카락이며 와인같이 붉은 눈동자며. 그를 저 아득히 먼 곳에서 보았다고 한들 쉽게 눈을 떼지 못할 터라고, 어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다.
레니발렌은 그 모든 말이 싫지 않음과 별개로 자신의 눈동자에 아주 가끔 아쉬움이 생기곤 했다. 하나뿐인 누나의 눈동자를 닮았더라면 어땠을까. 엷은 분홍색이 일렁이는 누나의 눈동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아는 사람 중에선 그렇다. 오로지 그만이 누나의 눈동자를 부러워했다. 한 번은 이 말을 중얼거리자, 옆에 앉은 이름 모를 학생이 물었다.
왜 하필 그 눈동자가 부러우세요?
눈치 없이 끼어든 물음에 그는 대답 대신 눈웃음을 지어주려다 입안의 혀를 굴렸다. 어젯밤, 아주 작게 열린 방문 틈새로 기도하는 누나의 얼굴을 떠오른다. 한참 기도 자세를 유지하던 누나의 눈꺼풀이 느릿하게 올라가던 그 순간에 집중한다. 눈꺼풀 속에 감춰졌던 눈동자가 서서히 드러나고 책상 위 둔 조명의 빛과 불 꺼진 방 안의 그림자가 이마에서 손을 떼어내는 얼굴을 적신다.
……성녀님.
나직이 내뱉는 그 이름이 이명처럼 반복된다. 엷은 분홍색 눈동자. 레니발렌은 누나의 눈동자를 볼 때면 이보다 더 사랑에 가까운 색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혀를 굴리던 입안에서 그 누구도 모르게 단언했다.
***
“리엔시에, 대체 왜 여기서 그런……, 차림을 한 거야?”
레니발렌은 흔들리는 눈을 감추지 못한 채 리엔시에의 손목을 꽉 쥐었다. 자기 몸보다 한 치수 커 보이는 수녀복을 걸친 누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예의상 질문을 던져봤지만 이유야 뻔하다. 성녀를 보기 위해 몰래 신전에 숨어들어온 거겠지. 자신의 누나에 대한 소문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떠도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냥…….”
“그냥?”
레니발렌은 누나의 꾹 닫힌 누나의 입술이 다시 움직이길 기다렸다. 설마 저게 대답의 전부일 리는 없다.
“…….”
아, 전부구나. 어디선가 굴러온 바위가 가슴을 짓누른다. 얹힌 듯한 느낌에 그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며 누나의 손목을 쥔 힘을 풀었다. 기도하기 위해 오랜만에 신전에 찾아왔다. 제멋대로 들락날락할 수 없는 곳이니 평소보다 공들여 기도한 후, 기도실에서 나오던 참이었다. 숨길 생각이 없는 건지 누가 알아차리든 말든 상관없는 건지, 남의 수녀복을 대충 걸친 리엔시에와 눈이 마주쳤다.
저만큼이나 당황한 듯 눈이 평소보다 커진 리엔시에의 몸이 그 자리서 굳어버렸다. 오른발이 뻗은 방향으로 봐선 성녀가 지내는 곳으로 가던 중이었겠지. 이곳에서 마주쳐선 안 될 이와 마주쳐버린 레니발렌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다급하게 리엔시에의 손목을 끌고 도로 기도실에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들켜선 안 된다. 허가받고 들어온 자신은 몰라도 허가 없이 몰래 침입한 자신의 누나를 곱게 보진 않을 테니까.
답답한 한숨을 호흡처럼 마구 내뱉던 레니발렌은 변명 하나 없이 조용한 리엔시에를 쳐다봤다. 눈치를 볼 거라곤 생각 안 했지만 아예 시선이 자신이 아닌 다른 쪽으로 향할 줄은 몰랐다. 무언갈 바라보는 투명한 눈동자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누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틀었다. 햇빛이 은은하게 내리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뚫어져라 보는 눈의 의미를 모르겠다.
“아.”
레니발렌은 미간에 선 몇 가닥이 지고서야 시선의 끝을 알 수 있었다.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의 표면이 긁힌 곳 너머로 잔디 위에 선 성녀가 보였다. 레니발렌은 자신을 코앞에 두고도 어지간한 시력이 아니면 보이지 않을 성녀만을 바라보는 누나에게 묘한 감정이 일렁였다.
관심을 받지 못해 생겨난 질투일까,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치미는 분노일까. 짙은 붉은 눈동자가 품이 커 주름진 새까만 수녀복을 훑는다.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어딘가 묘한 기시감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즈음이었다.
가만히 서 있던 리엔시에의 발이 다급하게 기도실 밖으로 향한다. 앞에서 여전히 미간만 찌푸리고 있던 레니발렌은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수녀복을 낚아챘다. 허리 옷감이 잡힌 리엔시에의 고개는 뻣뻣하게 굳어 뒤돌아볼 기미조차 안 보였다. 성녀가 자리를 떴구나. 레니발렌은 오른손 가득 쥔 부드러운 옷감을 흘기며 물었다.
“성녀님을 사랑하는 거야?”
이 빌어먹을 기시감을 언제 느껴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저 꼿꼿한 옆모습을 볼 때마다 느꼈을지도 모르지. 성녀를 향한 누나의 감정이 온전한 사랑인 걸까. 이해할 수 없다. 레니발렌의 물음에 리엔시에의 눈이 처음으로 그를 돌아봤다.
엷은 분홍색이 일렁이는 눈동자에 붉은 눈동자가 비친다. 순간 누나를 붙잡은 동생의 손에 힘이 풀렸다. 리엔시에는 자신을 붙잡은 손이 떨어지자 곧바로 기도실을 빠져나갔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레니발렌은 자신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성녀를 향한 리엔시에의 마음은 사랑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 중 성녀를 향한 누나의 마음과 가장 흡사한 것을 고르라면 사랑이었다.
색색의 빛이 내리비치는 기도실에 홀로 남은 그는 아직도 손바닥에 남은 수녀복의 감촉을 더듬었다. 레니발렌은 그날 입안에서 굴리던 자신의 단언을 떠올린다. 누나를 이룬 모든 게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나는 저 사랑이 좇는 곳엔 영원히 들어가지 못하겠구나.
레니발렌은 얹힌 가슴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누나의 낮은 구두 굽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푹 숙인 머리 위로 내려앉은 햇살이 미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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