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 BL
좆빠지게 달렸다. 숨이 목구멍까지 들어차 빠져나오지도 못할 정도로 달렸다. 컥컥, 하고 숨을 헐떡이며 기침을 토해냈다. 벌어진 입술에서 침이 줄줄 샜다. 씨발. 웨이는 먼지 가득한 두 손으로 얼굴을 마구 문질러댔다. 눈꺼풀이고 코고 입술이고 다 짓뭉개졌다. 이 일도 이제 못 해 먹겠다. 턱을 하늘로 치켜들고 한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뒤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놓쳤어?”
얼굴에서 손을 떼고 뒤를 돌아봤다. 하얀 셔츠의 윗단추까지 꼭꼭 채워 잠근 즈천이었다. 즈천은 그 담뱃재나 가래침 하나 안 묻은 검은 구두를 신고 걸어왔다. 일정하게 울려 퍼지는 굽 소리가 좆같았다. 이래서 돈 많은 새끼는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 자격지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웨이는 즈천을 향한 자격지심을 버릴 수 없었다.
“대충 위치 파악했으니까 내일이면 잡힐 거야.”
“어차피 하루 만에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그 새끼 얼굴 꼬락서니 보니까 돈 어디다 꼬라박고 미친놈 같았거든.”
“여기 사는 사람들이랑 다 같은 얼굴이란 건가?”
푸석한 머리카락을 뒤로 쭉 쓸어넘겼다. 즈천은 웨이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의도가 훤했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상대가 원하는 대로 대답해줬다. 그래, 돈은 받아야지. 이렇게 좆빠지게 뛰어다녔는데.
“엉, 너 빼고 다 똑같이 생겼어.”
떠먹여주는 수준으로 대답해줬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코딱지만 한 그 작은 집이 이토록 간절해지는 건 오랜만이었다. 내일 다시 연락하라고 손을 흔들었다. 운동화 밑창이 누군가의 가래침과 흙, 담뱃재로 쩍쩍 달라붙었다. 씻고 싶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뛰어다니며 돈을 벌지 않았을 거다. 적당히 걸으면서 적당히 입에 풀칠할 정도로만 벌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숨 쉬는. 그게 웨이의 24년 인생이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귀한 손님을 찾게 된 건 사장의 지시도 내 의지도 아니었다. 즈천. 한국계 중국인이라는 놈의 지시였다. 다짜고짜 그 허름한 사무실로 쳐들어와 나보고 자기 손님을 찾아달란다. 사장은 즈천을 보자마자 기가 막히게 돈 냄새를 맡았는지 바로 좋다고 굽신거렸다. 돈이 그렇게 좋으면 지가 뛰지, 왜 나한테 시키고 지랄이야.
웨이는 땀에 흠뻑 젖은 몸에서 하얀 티셔츠를 떼어냈다. 땀에 젖은 티가 점점 속이 비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얼마 남지 않은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입술에 담배 하나 물고 다 무너져가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여기저기서 쥐와 고양이가 울어대는 소리가 났다. 저 너머 어딘가에선 바퀴벌레나 지네가 구겨진 신문지나 박스를 기어다니는 작은 소리가 났고 들이켜는 공기 속에선 희미한 아편 냄새가 났다.
한참 미치는 언어 능력으로는 표현 못 할 냄새였다. 사람들은 이 냄새를 모르핀 냄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는 거라곤 그런 것뿐이니까. 폐 속으로 싸구려 니코틴이 밀려들었다. 웨이는 푸석한 머리카락을 습관적으로 뒤로 쓸어넘기며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코로도 연기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건물을 나와 골목에 들어선 때였다. 아까부터 뒤에서 쭉 들리던 구두 굽 소리가 멈췄다. 즈천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했다. 놈은 척 봐도 돈 많은 사업가처럼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곱게 돈 벌 것처럼 생긴 건 아니었다. 고상한 척하면서 뒤에서 마약이나 유통하며 대부들의 아래에서 설설 길 게 뻔했다. 보통 이곳을 찾는 놈들은 다 그러니까. 웨이는 느릿하게 눈꺼풀을 끔뻑였다. 긴 검은 속눈썹이 따라 움직였다. 눈 아래가 뻐근했다. 땀을 쭉 빼고 입에 담배나 꼴아물고 있으니 졸음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즈천의 굽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돌아갔나 싶어 흘끗 뒤를 돌아봤다.
“언제 돌아봐 주나 했어.”
즈천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뒤에 우두커니 서 웨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 큰 키에 살짝 떨어진 거리에도 시선이 내려가 있었다. 즈천은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귀찮게 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집까지 찾아와 자기 손님은 찾았냐느니, 밥은 먹었니, 오늘은 다른 일 안 할 거냐느니, 몇 살이라느니. 자기 손님 못 찾으면 나라도 팔아먹고 싶나 보다.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 사이에 홀로 멀끔히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봤다. 입에 물린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빼냈다. 토해내는 숨에서 탁한 연기가 맥없이 흘러내렸다.
“바라는 게 뭔데?”
푸석한 머리카락 안도 어느새 땀에 부분부분 젖어있었다. 찝찝했다. 씻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즈천은 점점 다가왔다. 돈 없이 살아본 적 없어 보였다. 웨이는 즈천을 자격지심으로 범벅된 눈으로만 보았다. 그게 편했다. 즈천은 어느새 웨이의 코앞에 서 있었다. 내리깐 눈꺼풀 너머로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즈천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어디 모자란 새끼인가 싶어 갈 길 가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다.
“같이 저녁 먹자.”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눈은 여전히 웨이를 내려다보면서 입은 웃고 있었다. 기껏 따라와서 하는 말이 같이 저녁 먹자? 웨이는 허, 하고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웨이는 미간을 잔뜩 구겼다. 한쪽 입꼬리만 삐죽 올려 웃으며 즈천을 올려다봤다.
“너 남자 좋아하냐?”
개발될 여지 하나 없는 이 시궁창 같은 곳에선 그런 놈들이 많았다. 이상성욕이라 하나. 웨이한테도 그런 놈들이 여럿 붙었다. 지긋지긋했다. 놈들은 다 이렇게 대놓고 물으면 아니라고 하면서 계속 몸을 붙어댔다. 그 동태눈깔을 꼴에 진득하게 내리깔면서 말이다. 즈천도 똑같겠지. 그나마 그놈들과는 다른 점은 즈천은 동태눈깔은 아니라는 거다. 그래봤자 지만. 즈천은 웨이의 질문에 고갤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응, 좋아해.”
그게 왜? 그리곤 오히려 웨이를 이상하단 눈으로 내려봤다. 한순간에 이상한 놈은 즈천이 아니라 웨이가 돼버렸다. 쓸데없이 당당한 상대의 모습에 아무 말 못 하고 담뱃재나 뚝뚝 떨궜다. 웨이는 즈천의 그 두 눈동자를 멍하니 올려다보며 확신했다. 걸려도 나사 빠진 놈이 걸려버렸다. 대충, 나사 열 개쯤 빠진 놈 말이다. 치이익, 끝까지 타들어 간 담뱃불이 웨이의 검지와 중지의 살갗을 태우는 소리였다. 모르핀 냄새와 담배 찌든 내, 웨이의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