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H_ 2022. 6. 2. 17:15

모르핀 냄새. 웨이는 이 냄새가 어떤 냄새인지 설명할 수 없다. 스물넷 먹도록 배운 것 하나 없이 살았다. 어쩌면 무언갈 설명하는 데에 능하지 못한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즈천은 배운 것도 아는 것도 많아 구사할 수 있는 영역이 남달랐다.

 

웨이는 그런 즈천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돈 몇 푼 쥐여주고 이 사람 찾아달라 저 사람 찾아달라 온갖 지랄염병을 떨어대는 즈천에게 뭐라 말 붙일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니까.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냄새나는 누더기를 나름 차려입은 것처럼 꾸민 거지새끼들 사이에서, 홀로 깨끗한 흰 셔츠를 입은 즈천이 웨이를 불러낸 날이.

 

드물게 사장이 크게 쏜다며 식구들에게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소파에 앉아 달달거리는 선풍기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댄 웨이는 이때다 싶어 외쳤다. 슈메이, 슈메이, 슈메이! 미친놈처럼 슈메이를 계속 외쳐대자 사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몇 번 저었다. 물론 끝에는 알겠다고 소리쳤다.

 

저 새끼가 웬일이래. 원금도 늘 며칠 뒤에 생색내며 주는 게 사장이다. 그런 사장이 웬일로 점심을 사주겠다고 나서는 꼴이 영 찝찝하다. 하지만 죽든 살든 일단 빨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빨아먹고 죽으랬다. 누가? 옆에 앉아서 웨이 못지 않게 온갖 음식 이름을 외치던 리장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리장은 고갤 숙이고 웨이에게만 들릴 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장이 이번에 거물 손님 하나 물었다더라.”

“거물? 그게 누군데.”

 

지금 사장이 바짓가랑이 잡고 대롱대롱 내달려 있는 즈천도 거물이라 칭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런 거물이 한 명도 아니라 두 명이 저놈에게 붙는다고? 분명 뭔가 있다. 이유는 사장이 말해줄 때까지 알 수 없겠지만.

 

웨이는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 금세 머리가 아파졌는지 선풍기 쪽으로 고갤 돌렸다. 사장은 점점 쏟아지는 고가의 음식 이름에 손사래를 쳤다. 이 정도면 됐지? 사장의 마지막 외침을 장식해주는 건 늘 그렇듯 리장이었다. 라우 이우 파이! 미친놈아, 그건 너무 비싸잖아!

 

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에 도착했다. 작은 사무실 안에 덩치 큰 사내들이 음식을 소중히 받들고 상 위에 내려놓는다. 사장은 리장이 끝에 외친 음식은 주문하지 않았지만 웨이가 외친 음식은 두 접시나 시켰다. 이 새끼 진짜 무슨 일 있나? 여전히 미심쩍은 상황. 하지만 웨이의 시선과 손은 의심스러운 사장보단 하얀 접시 위에 올려진 기름진 오리고기에 꽂혔다.

 

어서 먹으라는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구의 사내들은 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긴 젓가락을 마구 쑤셨다. 웨이는 누가 뺏어가랴 빠르게 접시 위에 올려진 오리의 다리를 젓가락으로 집고 다른 한 손으론 목을 잡아 들었다. 접시 위에 올리지도 않고 그대로 아슬아슬하게 들어 올린다.

 

허겁지겁 기름이 반질반질한 껍데기에 이를 박아넣었다. 입술이 번들거리는 기름을 쭉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웨이의 턱에 육즙이 줄줄 흘러내렸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부드러운 살덩이를 입안에 욱여넣는 웨이를 보고 사장은 혀를 내둘렀다.

 

“내가 너 굶겼냐? 천천히 좀 먹어.”

 

굶기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 먹인 것도 아니지. 웨이는 대답 대신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이와 혀를 쉴 틈 없이 움직이며 리장이 건네준 휴지로 입술과 손을 닦았다. 덜컥, 하고 저번 주에 고장 난 쇠 문고리가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웨이 못지않게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던 사내들의 시선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웨이의 옅은 갈색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낡은 쇠문이 열리자마자 사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이고, 사장님.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사장의 젓가락이 집고 있던 딤섬이 동그란 대나무 판 위로 떨어졌다. 홀로 문을 열고 들어온 즈천은 그런 사장을 향해 입꼬릴 올려 웃어줬다. 웬일로 비서니 경호원이니 하던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식사 중이셨군요.”

 

즈천의 고개가 기다란 상 주변을 둘러싼 사내들 쪽으로 돌아갔다. 웨이는 즈천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바로 눈을 깔았다. 쫀 건 아니고 괜히 눈 마주치면 열만 오를 게 뻔해서다. 리장은 묵묵히 입안에 음식을 밀어넣고 있었다. 웨이와 리장은 눈을 내리깔고 복화술을 시작했다.

 

“저 새끼는 씨이벌, 할 일이 없나. 허구한 날 오고 난리야.”

 

웨이의 입술이 한 치의 떨림 없이 속삭였다. 입안 가득 사장의 딤섬을 몰래 쑤셔넣던 리장의 입술도 음식을 씹는 척 작게 웅얼거렸다.

 

“너는 왜 그렇게 쟬 시흐허, 쯥, 하냐?”

“다 처먹고 말해. 더럽게 진짜.”

“지 드러운 건……, 생각 안하고…….”

 

그러면서 대뜸 웨이에게 자신의 입안을 낼름 보여준다. 좆같은 새끼가. 젓가락을 쥔 웨이의 손이 리장의 관자놀이를 세게 내리쳤다. 리장은 머리가 띵한지 인상을 구겼고 웨이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젓가락을 제대로 쥐었다. 흘끗, 즈천은 사장과 뭔 얘기를 하는지 이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예상은 점점 사실처럼 흘러갔고 몇 분이 지나도록 자신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즈천을 보고 웨이는 확신했다. 오늘은 내게 볼일이 없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렇게 마음 놓고 다시 식사를 재개하려던 참이었다.

 

“웨이!”

 

리장이 뺏은 사장의 딤섬을 내가 도로 뺏으려는데 누군가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누가 봐도 사장의 목소리였기에 웨이는 들킨 이상 백은 없다며 냅다 입안에 그 뜨거운 딤섬 두 개를 쑤셔 넣었다. 볼이 빵빵해진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여.”

 

자신의 딤섬 가지고 뭐라 하려는줄 알았던 사장은 볼이 빵빵해진 웨이를 보고 기가 찬 지 코웃음을 쳤다.

 

“진짜 추하네……. 내가 언제 먹는 거로 너한테 면박 줬냐?”

“예.”

 

사장의 옆에 서있던 즈천은 볼이 빵빵해진 채로 당당하게 일어선 웨이를 보고 웃음을 참았다. 올라간 입꼬리는 내릴 생각 없는지 주먹 쥔 손으로만 슬쩍 가렸다. 사장은 웨이에게 이리오라며 손짓했고 웨이는 입안에 든 음식물을 다 삼키고 사장에게 다가갔다. 사장은 즈천과 웨이를 데리고 사장실로 향했다.

 

긴 복도를 지나 끝에 위치한 사장실은 아까 그 작고 허름하던 사무실과는 달리 깨끗했다. 거기다 소파도 고급지고 기스 하나 안 난 새것이었다. 사장은 즈천에게 어서 앉으라며 활짝 웃었다. 송곳니 옆에 자리한 금니가 반짝인다. 즈천과 사장은 자리에 앉고 웨이는 사장의 옆에 삐딱하게 섰다. 볼일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눈이 마주친 즈천은 여전히 웃고있었다. 속 좋은 새끼.

 

“그럼 잔바리놈들은 저희 선에서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사장의 물음에 즈천은 웨이를 향했던 고갤 돌리며 대답했다.

 

“네. 어차피 전에 도망갔던 놈들은 이미 위치가 발각돼서 자포자기한 상태였으니까요.”

“남은 한 놈의 위치는 마침 어젯밤 저희 쪽에서 확인했습니다. 아직 이 근방에 숨어있습니다. 사람 여럿 붙여뒀으니 지시만 하시면 이쪽으로 유인하겠습니다.”

 

사장은 자신만만한 듯 팔짱까지 꼈다. 두툼한 입술이 입꼬리와 함께 올라간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거래는 위치 확인만이었고요.”

“아……, 그렇군요.”

 

어떻게든 즈천에게 잘 보이려던 사장은 괜히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이놈만 빌려드리면 되는 건가요?”

 

사장의 턱 끝이 설렁설렁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웨이에게 향했다. 어디 창고에 쑤셔 박아뒀던 짐짝을 빌려주는 것 같은 표현에도 웨이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저 사장에게서 희미하게 나는 모르핀 냄새에 코를 한 번 킁, 들이켰다.

 

짧은 정적. 즈천은 사장의 물음에 대답 없이 그 긴 다리를 꼰 채로 검지를 팔걸이에 규칙적으로 두들겼다. 체감상 한참 뒤에서야 나온 대답은 사장과 웨이의 고개를 절로 들게 만들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예?”

 

사장은 그 대답을 예상하지 못한 듯 다시 한번 더 물었다. 당황한 사장의 되물음에도 즈천의 대답은 같았다.

 

“안 빌려주셔도 됩니다.”

“그럼 왜 데려오시라고……?”

“아, 그냥 가까이서 보려고요.”

 

뭔 개소리야, 그게.

 

“자꾸 절 피하려고 발악하길래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참나 해서요.”

 

그게 뭔. 즈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이 뒤따라 일어나려 하자 앉아있으라며 먼저 사장실 문을 열었다.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고 싶었지만 주름 없이 평평하던 웨이의 미간은 어쩔 수 없이 구겨졌다. 웨이가 즈천의 눈을 피하고자 눈을 깔았을 때, 즈천은 계속 웨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웨이는 문을 나서는 즈천을 노려봤다. 즈천은 웨이의 행동을 예상했는지 고갤 뒤로 돌린 채 웨이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 쌍꺼풀 하나 안 진 매끈한 눈이 두꺼운 애굣살과 함께 휘었다. 즈천은 긴 검지와 엄지를 들고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리곤 그 안에 긴 혀를 넣는 시늉을 하며 소리 없이 낄낄 웃었다. 저 또라이 새끼가……. 즈천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문을 닫을 때까지 눈웃음을 풀지 않고 나갔다. 분명 소리 없이 웃었지만 그 미친 웃음소리가 귓가에 이명처럼 맴돌았다.

 

“야, 저놈 진짜 약 한 것 같지 않냐?”

 

돌아도 너무 돌았어, 저거.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던 담뱃갑을 집은 사장이 말했다. 웨이는 자연스럽게 사장의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빼내며 대답했다.

 

“약은 안 했을걸요.”

“네가 어떻게 아는데.”

 

치익. 얼마 남지 않은 라이터를 켜 담배를 태운다. 웨이는 입술 새에 끼운 담배에서 연기를 깊게 들이켰다. 크게 부푼 흉부가 공기 빠진 풍선처럼 가라앉는다. 그리곤 사장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입 안에선 약 맛이 안 나던데. 그냥 쓴맛만 났었다. 단맛도 아니고 쓴맛. 웨이는 그날 목구멍으로 넘어온 것이 떠올라, 괜히 재떨이에 침을 퉤 뱉었다.